바다가 밀려오는 마을, 나몰리의 선택은 누구의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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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밀려오는 마을, 나몰리의 선택은 누구의 책임인가

피지 북서부의 나몰리 마을에서는 바다가 더 이상 먼 풍경이 아니다. 만조와 폭우, 높은 파도가 겹치면 바닷물이 집과 마을길로 들어오고, 공동묘지까지 침수될 수 있다는 불안이 주민들의 일상이 됐다. 해수면 상승은 통계 속의 환경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잠자리와 아이들의 통학, 조상의 묘를 지키는 일에 직접 닿아 있다.
나몰리에는 약 500명이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300여 명은 18세 미만이다. 주택가와 해안의 거리가 약 30m에 불과한 이 마을에서 기후위기의 가장 긴 시간은 어린이들에게 남는다. 피지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라우토카 지역 해수면은 연평균 4~5㎜ 높아지고 있다. 몇 ㎜라는 수치만 보면 작아 보일 수 있지만, 낮은 해안 마을에서는 만조의 높이와 파도의 세기, 집중호우 때 물이 빠져나갈 길을 바꿀 수 있는 변화다.
주민들이 겪은 큰 침수의 기억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다. 2010년 부활절 무렵, 만조와 폭우, 거센 파도가 한꺼번에 겹치며 마을 상당 부분이 물에 잠겼다. 주민들은 지금도 물건을 높은 곳에 올려두며 다음 침수에 대비한다. 재난에 대비한다는 말이 때로는 거창하게 들리지만, 이곳에서는 생활용품을 조금이라도 높은 곳으로 옮기는 일이 가장 현실적인 방어가 된다.
정부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약 440m 길이의 방파제를 설치했다. 그러나 구조물이 들어선 뒤에도 침수는 계속됐다. 일부 주민은 방파제 아래 배수로를 통해 바닷물이 역류하면서 피해가 커진다고 호소한다. 이것은 방파제가 필요 없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해안 방재는 벽 하나를 세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물이 들어오는 경로와 빠져나가는 경로, 강우량과 지형, 구조물 주변의 침식과 유지관리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도 비현실적인 약속이 아니다. 방파제를 보강하고 배수시설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해 달라는 것이다. 자재가 제공된다면 공사에 참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안전을 위한 공공 투자는 주민을 수동적인 수혜자로 남겨두는 방식보다, 지역의 경험과 참여를 설계에 반영할 때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반복 침수 지역에서는 공사 완료 자체보다
이후 점검과 보수 체계가 중요하다.
나몰리의 문제는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라는 선택으로만 다뤄져서는 안 된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안전하게 살고 싶다는 주민의 바람에는 삶의 터전, 공동체 관계, 조상과 가족의 기억이 함께 담겨 있다. 이주가 필요한 상황이 생길 가능성을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충분한 보호 조치와 지원을 다 해보기도 전에 주민에게 떠남을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기독교 신앙은 고통받는 이웃을 먼 곳의 통계로 보지 말라고 요청한다. 로마서 12장 15절의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권면은 연민의 감정에만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의 집이 침수되고 아이들의 미래가 위협받을 때, 그 위험이 왜 특정 공동체에 더 집중되는지 묻고 필요한 도움을 함께 마련하라는 부름에 가깝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도 고통을 지나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돌보는 행동을 보여 준다.
나몰리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관심이 아니라 안전하게 살 권리를 뒷받침할 실질적 조치다. 해수면 상승의 속도와 침수 위험은 계속 점검해야 하며, 방파제와 배수시설의 효과 역시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평가될 필요가 있다. 작은 해안 마을의 요청을 듣는 일은 먼 섬나라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 변화의 부담을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떠안는 사람들과 어떻게 책임을 나눌 것인지 묻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댓글목록2
커피한잔님의 댓글
주민들이 단순히 지원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공사 참여 의사까지 밝힌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네요.
떠남을 선택지로 말하기 전에 현재의 생활 터전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충분히 검토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아요.
특히 아이들이 많은 마을인 만큼, 점검과 보수 계획이 일회성 사업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드니촌놈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