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나온 한 장의 메모, 피해 사실을 말한 뒤에도 남는 가족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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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나온 한 장의 메모, 피해 사실을 말한 뒤에도 남는 가족의 시간

호주의 유명 방송인 앨런 존스를 둘러싼 성추행 혐의 재판에서, 고소인 A의 어머니가 법정에서 눈물을 보였다는 보도는 이 사건이 단지 유명인의 법적 공방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법정에 공개된 것은 아들이 십대 시절 피츠로이 폴스에 있는 존스의 소유지에서 겪었다고 적은 손글씨 메모였다. 짧은 기록 하나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가족에게 어떤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지 짐작하게 한다.
성폭력 사건을 바라볼 때 사람들은 흔히 피해 사실이 알려진 뒤의 행동을 단순한 기준으로 재단한다. 왜 즉시 신고하지 않았는지, 왜 상대와 연락을 끊지 못했는지, 왜 주변에 곧바로 알리지 않았는지를 묻는다. 이번 재판에서도 검찰은 아들이 피해를 말했다고 한 뒤에도 어머니가 존스와 연락을 이어간 이유를 질문했다.
그러나 이런 질문에 답하는 과정은 당사자와 가족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상대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어른이거나, 피해자가 아직 미성년 또는 십대였던 상황이라면 가족은 혼란과 두려움, 죄책감, 관계 단절에 따른 현실적 부담을 함께 겪을 수 있다. 당시 어떤 정보를 알고 있었는지, 어떤 말이 오갔는지, 어떤 선택지가 가능했는지는 시간이 흐른 뒤의 시선으로 간단히 판단하기 어렵다.
어머니가 십대 아들을 맡겼다는 사실 역시 비난의 근거가 아니라, 보호자가 느낄 수 있는 신뢰와 그 신뢰가 흔들릴 때의 고통을 생각하게 한다. 아이를 믿을 만하다고 여긴 어른이나 기관에 맡기는 일은 일상에서 흔하다. 만일 그 신뢰가 훼손됐다면 피해를 호소한 사람뿐 아니라 보호자도 ‘내가 막을 수 있었던 일인가’라는 질문에 오랫동안 붙잡힐 수 있다.
법정은 제기된 혐의를 증거와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판단해야 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공개된 증언과 메모만으로 재판의 결론을 미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법적 판단을 기다린다는 이유로, 법정에서 증언하고 기록을 마주해야 하는 고소인과 가족의 심리적 부담까지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이 사건이 던지는 중요한 질문은 유명인의 명성이나 사건의 화제성보다, 우리가 피해 호소를 어떤 태도로 듣느냐에 있다. 피해자의 행동이 우리가 기대하는 ‘완벽한 대응’과 달랐다는 이유만으로 경험 전체를 의심하는 문화는 더 많은 침묵을 낳을 수 있다. 성폭력 의혹을 다룰 때 필요한 것은 성급한 판결이 아니라, 사실관계에는 신중하고 사람의 고통에는 무심하지 않은 태도다.
한 장의 손글씨 메모가 법정에서 읽히는 순간은 과거의 일이 단순히 지나간 일이 아님을 드러낸다. 공적 절차는 진실을 가리는 데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 선 이들이 감당하는 시간까지 지워주지는 못한다. 사회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피해를 말하는 사람과 그 가족에게 ‘왜 그렇게 했느냐’는 질문만 던지기보다, 왜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혼자 감당해야 했는지를 함께 묻는 일일 것이다.
댓글목록2
소풍님의 댓글
법적 판단은 차분히 지켜보되, 증언하는 분들과 가족이 감당할 마음의 무게도 가볍게 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진달래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