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스트 형제단 문서 소환, ‘법적 방어’와 책임 회피 사이를 묻다
본문
마리스트 형제단 문서 소환, ‘법적 방어’와 책임 회피 사이를 묻다

마리스트 형제단을 둘러싼 성범죄 대응 논란에서 다시 주목받는 것은 2009년 작성된 법률 서한이다. 당시 형제단 대표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진 이 문서는, 한 성범죄 혐의자를 법적 조치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과 관련해 변호사들이 조언한 배경을 담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법원 절차에서는 이 기밀 문서의 제출을 요구하는 소환장도 발부된
것으로 전해진다.
쟁점은 단순히 오래된 서신 한 장이 아니다. 해당 인물이 진술할 경우 교회 고위 관계자들까지 연루될 수 있다는 취지의 내용이 문서에 담겼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조직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또 누구를 보호하려 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피하기 어렵다. 이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기관의 의사결정 구조와 기록 관리, 피해 신고 대응 방식까지 살펴봐야 하는 문제다.
법률 조언은 책임을 대신하지 않는다
모든 개인과 기관은 법률 자문을 받을 권리가 있다. 특히 수십 년 전 사건과 관련된 민형사 책임, 보험, 기록 보존 문제는 복잡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적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전략과 피해자에 대한 도덕적·제도적 책임은 같은 말이 아니다.
성범죄 사안에서 기관이 가장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어떻게 소송 부담을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피해를 입었고,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당시 무엇을 했는가’여야 한다. 만일 법적 절차에서 특정 인물을 배제하는 판단이 피해 사실의 규명이나 책임 소재 확인보다 조직 보호에 무게를 둔 것으로 드러난다면, 법적으로 가능한 선택이었다 해도 사회적 신뢰는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특히 종교·교육 기관은 구성원과 학부모, 학생에게 높은 수준의 신뢰를 요청해 온 곳이다. 그 신뢰는 기관의 명성이나 전통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불편한 기록을 보존하고, 독립적인 조사에 협조하며, 과거의 실패를 축소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로소 회복의 출발점이 만들어진다.
문서 공개가 필요한 이유
소환장의 목적은 누군가를 미리 유죄로 단정하는 데 있지 않다. 당시의 판단이 어떤 정보와 논리 위에서 이뤄졌는지 검증하기 위해서다. 관련 문서가 실제로 존재하고 법원이 제출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기관과 관계자들은 절차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 기밀 유지나 법률전문가 특권이 적용될 여지가 있는지는 법원이 판단할 사안이지만, 그것이 곧바로 사회적 설명 책임까지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피해 생존자와 가족에게 과거 사건의 재조명은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언론과 공동체도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확대하거나 개인의 경험을 소모적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 다만 피해자의 목소리가 오랫동안 조직의 침묵과 법적 방어 논리 뒤로 밀려났다면, 진실을 확인하려는 절차 자체는 존중받아야 한다.
마리스트 형제단 사안은 한 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권위와 신뢰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모든 조직에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잘못을 마주할 때 우리는 명예를 지키려 하는가, 아니면 사람을 지키려 하는가. 책임 있는 대응은 법정에서의 승패보다 먼저, 피해를 입은 이들의 존엄과 알 권리를 중심에 놓는 데서 시작된다.
댓글목록1
오늘도맑음님의 댓글
피해를 입은 분들이 또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투명하게 진행됐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