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가 1937년 독일과 일본과 협력 체제를 형성하기 전까지 몰타는 이탈리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이로 인해 몰타 주민들은 이탈리아의 침공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으며, 이탈리아 비행기가 몰타 상공에 나타나면 폭탄 대신 초콜릿이나 꽃다발을 투하할 것이라고 믿었다.
몰타는 지중해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로 여겨졌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침공 당시와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몰타는 연합국과 추축국 모두에게 중요한 전투의 무대가 되었다. 독일 아프리카 군단을 지휘한 롬멜 장군은 몰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몰타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추축국은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몰타를 ‘불침 항공모함’이라고 부르며, 전쟁 기간 동안 몰타에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했다. 몰타 방어전에서 영국군은 독일과 이탈리아군의 3,400회가 넘는 공습을 견뎌냈고, 이로 인해 독일과 이탈리아군의 상륙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몰타에서의 전투는 영국군 전투기와 함대가 북아프리카의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에 대한 공격을 통해 연합군의 승리에 기여했다. 영국 조지 국왕은 1942년 4월 15일 몰타 주민의 용맹을 기리며 조지 십자훈장을 수여했고, 1943년 6월 20일에는 직접 몰타를 방문했다.
몰타는 1565년 오스만 제국 군대를 격퇴한 날과 같은 날, 378년 후 다시 한 번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를 열었다. 몰타 주민들은 3년 동안의 고립과 3천 회가 넘는 공습을 견디며 승리를 만끽했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3년과 1945년에 두 차례 몰타를 방문해 주민들의 용기와 희생을 치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미국의 정상들이 여러 차례 몰타를 방문한 것은 이 섬의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몰타는 2천 년 전 사도 바울이 복음의 씨앗을 뿌린 장소로, 16세기와 20세기 모두에서 유럽과 세계를 구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사진제공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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