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한마디가 남긴 법의 상처, 로브텔메스 판결을 다시 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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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한마디가 남긴 법의 상처, 로브텔메스 판결을 다시 보는 이유

호주 헌법에서 ‘외국인’이라는 말은 결코 가벼운 분류가 아니다. 누가 이 나라에 머물 수 있는지, 누가 추방이나 구금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가르는 법적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906년 고등법원의 로브텔메스(Robtelmes) 판결은 오래된 사건이면서도 현재 진행형의 문제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호주 사우스시 섬 주민들이 있었다. 이들의 조상 가운데 많은 사람은 19세기 퀸즐랜드 사탕수수 산업을 위해 태평양 섬들에서 모집되거나 강제로 끌려왔다. 오늘날 ‘블랙버딩(blackbirding)’으로 불리는 이 과정에는 납치와 강압이 뒤섞여 있었다. 이들은 호주에서 일하고 가족을 이루며 공동체를 만들었지만, 백호주 정책 아래 그들의 정착 자체가 문제시됐다.
1901년 제정된 태평양 섬 노동자 법은 사우스시 섬 주민의 대규모 추방을 겨냥했다. 당시 추방 대상은 약 4,000명에서 6,000명으로 추정된다. 로브텔메스는 1897년 현재의 바누아투 지역에서 호주로 건너와 브리즈번 남쪽 마운트 코튼에서 일했던 노동자였다. 노동계약이 끝난 뒤에도 고용주와 계약을 이어가려 했으나, 그는 결국 추방 명령을 받았고 사건은 고등법원까지 올라갔다.
고등법원은 그를 비롯한 태평양 섬 주민을 헌법상 ‘외국인’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결론은 단지 한 노동자의 체류 문제를 넘어, 한 공동체를 호주에서 내보내는 정책에 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특히 많은 주민이 당시 영국 시민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갖고 있었고, 1911년 연방 인구조사에서도 호주에 남은 사우스시 섬 주민 다수의 영국 시민 지위가 확인됐다는 점은 이 판단의 불편한 면을 드러낸다.
법은 흔히 중립적인 언어로 말한다. 그러나 ‘외국인’이라는 단어가 누구에게 적용되는지는 시대의 인종 질서와 정치적 목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 로브텔메스 판결에서 문제 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호주에서 살아가며 가족과 지역사회를 이룬 사람들을, 피부색과 출신 지역을 기준으로 공동체 밖의 존재처럼 취급한 것은 아닌지 되묻게 한다.
이 판결이 오늘날 다시 언급되는 까닭은 과거사 논쟁에만 있지 않다. 고등법원은 이후에도 비시민권자의 추방과 구금에 관한 사건에서 로브텔메스 판결을 인용해 왔다. 정부가 영주권자를 포함한 비시민권자를 헌법상 외국인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을 펼 때에도 이 법리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시민권이 없는 사람의 권리와 국가의 국경 통제 권한이 충돌하는 순간, 1906년의 논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오늘날의 이민법과 당시의 백호주 정책을 그대로 동일시할 수는 없다. 법률 체계와 인권 기준, 시민권 제도는 크게 달라졌다. 그렇다고 과거 판결의 영향을 단순히 역사 속 일로 밀어둘 수도 없다. 법원이 어떤 전제를 통해 국가의 권한을 넓혀 왔는지 살피는 일은, 현재의 권한 행사가 누구에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점검하는 데 필요하다.
비판자들은 고등법원이 2020년에야 로브텔메스 판결에 담긴 인종화된 ‘외국인’ 개념을 인정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법원이 과거의 언어를 불편한 유산으로만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 언어가 오늘의 판결과 행정 권한에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개인의 삶을 법적 범주 하나로 지워버릴 위험은 없는지 더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
사우스시 섬 주민 공동체는 추방 정책 속에서도 살아남아 오늘날 호주 사회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로브텔메스 사건은 법이 한 사람의 소속감, 가족의 역사, 공동체의 뿌리를 얼마나 쉽게 추상적 범주 아래 놓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국경과 시민권의 기준은 필요하지만, 그 기준이 사람을 함부로 배제하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 역시 민주주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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