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정치에 동원될 때, 헌법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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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이 정치에 동원될 때, 헌법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12·3 내란 가담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군 지휘관들에게 중형이 선고된 것은 몇몇 개인의 일탈을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울중앙지법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징역 18년,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면서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병력 투입, 정치인 체포조 운영, 직권남용의 책임을 무겁게 판단했다. 아직 1심 판단으로 향후 항소 절차가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이번 판결이 던지는 헌법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군의 존재 이유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데 있다. 그러나 무력을 보유한 조직이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나 권력 유지에 동원되는 순간, 군은 국민의 안전을 위한 공적 기관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헌법과 법률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단순한 조직 운영 원칙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을 지탱하는 안전장치로 다룬다.
국회와 선관위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헌법기관이다
재판부가 특히 엄중하게 본 대목은 헌법기관의 기능을 멈추게 하거나 무력화하려 한 행위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가 법률과 국가적 의사를 결정하는 공간이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의 공정성과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보호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들에 병력이 투입되고 정치인의 신체 자유가 위협받는다면, 피해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투표권과 대표를 통해 국가 운영에 참여할 권리까지 흔들린다.
민주주의는 갈등이 없어서 유지되는 제도가 아니다. 선거 결과와 정책, 권력의 행사 방식을 두고 격렬하게 다투더라도, 그 다툼을 헌법과 법률의 절차 안에서 해결한다는 약속 때문에 유지된다. 정치적 혼란이나 국가적 위기가 닥쳤다는 이유만으로 그 절차를 군사력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위기일수록 제도를 지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은 다시 드러냈다.
명령과 책임 사이에서 군인은 무엇을 지켜야 하나
군 조직은 명령 체계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원칙이 명백히 위헌적이거나 불법적인 지시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지휘관에게 권한이 클수록 그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지 판단할 책임도 커진다. ‘윗선의 지시였다’는 말은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한 면책 사유가 되기 어렵다.
이번 재판에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는 징역 9년이 선고됐고, 재판부는 양심선언과 자술서 제출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 이는 불법 행위의 책임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조직 내부의 잘못을 드러내고 사실 규명에 협력하는 일이 민주적 통제와 재발 방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침묵과 복종만을 충성으로 여기는 조직문화는 결국 조직 자신과 국가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해외 한인사회에도 낯설지 않은 질문
호주에 사는 한인들에게 한국의 헌정질서 문제는 먼 나라의 정치 뉴스만은 아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신뢰는 재외동포의 삶,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현지의 시선, 다음 세대가 한국과 맺는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특히 호주는 문민통제, 독립된 선거 제도, 사법 절차의 중요성을 공적 가치로 강조해 온 사회다. 한국 역시 권력의 크기와 무관하게 헌법적 한계를 지켜야 국제사회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중형 선고만으로 군의 정치 개입 위험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은 군을 정쟁의 도구로 끌어들이지 않아야 하며, 군 내부는 불법 명령을 걸러낼 교육·감찰·보고 체계를 실질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시민사회 또한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일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기준을 지켜야 한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보복이나 진영의 승패가 아니다. 총을 가진 국가기관이 헌법 위에 설 수 없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데 있다. 군이 정치로부터 거리를 지킬 때 군의 명예도 지켜지고, 시민의 자유와 국가의 안정도 함께 보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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