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신고 역대 최고치, 국가계획은 무엇을 놓쳤나
본문
성폭력 신고 역대 최고치, 국가계획은 무엇을 놓쳤나

호주에서 2024년 성폭력 신고 건수가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는 최신 가정·성폭력 보고서는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지난 15년간 성폭력 신고는 64% 늘었다. 지난해 신고 건수가 전국적으로 1% 미만 감소했다는 수치만으로 상황이 호전됐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작은 등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랜 기간 이어진 증가 추세와, 폭력으로부터 안전해야 할 여성과 아동이 여전히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호주 정부는 여성과 아동 대상 폭력 종식을 위한 두 번째 국가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는 첫 번째 계획이 기대만큼 뚜렷한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국가계획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현장에서 폭력이 줄었다는 사실은 다르다. 목표와 슬로건, 예산 발표가 실제 피해자의 안전, 주거, 의료, 법률 지원으로 이어졌는지를 따져야 하는 이유다.
신고 건수 증가를 곧바로 성폭력 발생 증가와 완전히 동일시해서도 안 된다. 과거보다 신고 제도가 알려지고,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금 나아진 결과가 일부 반영됐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해석이 문제의 심각성을 낮추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신고를 선택한 사람 한 명 한 명에게는 폭력의 경험과 이후의 불안, 관계 단절, 생계와 주거의 위기가 뒤따를 수 있다.
통계는 피해의 규모를 가늠하게 하지만, 피해자가 감당한 현실 전체를 담지는 못한다.
특히 성폭력은 신고 자체가 쉽지 않은 범죄다. 수치심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가해자와의 관계, 언어와 문화의 장벽, 경찰과 사법 절차에 대한 불신 때문에 알려지지 않는 피해도 적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신고 수치가 높다는 것은 단순한 행정 통계가 아니라, 예방과 보호 체계가 더 촘촘해야 한다는 경고로 읽어야 한다.
두 번째 국가계획은 ‘폭력을 끝내겠다’는 선언을 반복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위기 상황에서 즉시 피신할 수 있는 안전한 주거, 지역별로 접근 가능한 상담과 의료 지원, 아동 피해자와 목격 아동을 위한 장기 돌봄, 경찰·법원·복지기관 사이의 끊기지 않는 연계가 핵심이다. 피해자에게 사건을 여러 기관에서 반복 설명하게 만드는 구조도 줄여야 한다. 지원 체계가 복잡할수록 도움을 청하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
예방 역시 사후 대응의 부속 항목이 아니라 계획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동의와 존중, 통제와 폭력의 경계를 가르치는 교육은 일회성 캠페인으로 끝나기 쉽다. 학교, 직장, 온라인 공간, 스포츠와 지역사회에서 성차별적 태도와 폭력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문화가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 남성과 소년을 예방의 주변부에 두지 않고,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 책임 있는 참여자로 세우는 접근도 필요하다.
국가계획의 성패는 문서의 완성도가 아니라 피해자가 실제로 더 안전해졌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정부는 목표별 성과와 예산 집행, 지역 간 지원 격차를 투명하게 점검받아야 한다. 역대 최고 수준의 신고 건수는 새 계획이 필요한 이유를 분명히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계획 발표가 아니라, 폭력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혼자 남겨지지 않는 사회적 약속의 이행이다.
댓글목록1
콩닥콩닥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