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루스 사건이 묻는 것, 아동보호의 빈틈은 왜 반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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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트루스 사건이 묻는 것, 아동보호의 빈틈은 왜 반복되는가

퀸즐랜드 검시 조사는 8세 엘리자베스 스트루스의 죽음을 한 가족이나 특정 종교 집단의 문제로만 남겨둘 수 없게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인슐린 치료가 중단된 끝에 2022년 당뇨병성 케톤산증으로 사망한 사건은, 가장 가까운 어른들이 의료적 필요를 외면했을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줬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이른바 ‘세인츠’로 알려진 단체의 성인 구성원들은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검시 과정에서 드러난 아동보호 체계의 모습도 무겁게 봐야 한다. 엘리자베스는 2019년 혼수 상태로 병원에 입원한 뒤 아동 안전 부서의 개입 대상이 됐다. 약 17주간의 집중 개입 뒤 당국은 가정을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관계를 종료했다. 결과를 이미 아는 지금의 시선으로 당시 모든 판단을 단순하게 비난할 수는 없지만, 아이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만성질환과 치료 거부 가능성이 충분히 경계 신호로 다뤄졌는지는 반드시 따져야 할 문제다.
과중한 사건 수가 위험 판단을 흐릴 때
담당자는 당시 25명에서 28명의 아동 사건을 맡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주간 점검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해당 가정은 다른 긴급 사건들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게 다뤄졌을 수 있다는 취지의 진술도 나왔다. 업무량이 많았다는 사실이 부실한 보호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 담당자 개인의 실수로만 책임을 좁히면, 다음 아이를 지킬 제도 개선도 놓치게 된다.
아동보호 업무에서 ‘위험이 커 보이는 사례’만 위험한 것은 아니다. 주거와 경제적 조건이 안정적으로 보이고, 보호자가 대화에 협조하며, 주변에 공동체의 지원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정도 아이에게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 특히 당뇨병처럼 치료 중단이 빠르게 생명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질환의 경우, 가정의 전반적 인상보다 치료의 지속 여부와 의료진의 우려를 더 엄격히 확인해야 한다.
가족이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부모나 보호자의 신념이 아동의 필수 의료 접근을 막고, 그 결과 생명과 건강을 해칠 위험이 생긴다면 사회와 국가는 개입할 책무가 있다. 종교의 자유와 아동의 생명권은 서로 맞바꿀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성인의 신념 선택이 아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분명하다.
‘사건 종결’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확인
이번 조사에서 제기된 조직 내부의 신속한 사건 종결 압박도 주목할 대목이다. 아동보호 기관은 한정된 인력으로 밀려드는 신고와 위기 사례를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사건을 닫는 속도가 성과처럼 여겨지는 환경에서는, 당장 폭력이나 방임의 흔적이 뚜렷하지 않은 아이들이 관리의 사각지대로 밀려날 수 있다.
복잡하지 않아 보인다는 판단 자체가 위험을 낮게 보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인원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위험 의료 상황을 별도로 표시하고, 의료기관·학교·아동보호 당국 사이의 정보 확인 절차를 촘촘히 하며, 치료 거부나 의료 방임의 징후가 있을 때 재평가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담당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 수가 배정되지 않도록 하는 관리 체계도 필수다. 현장 직원이 사건을 맡기 어렵다고 우려를 제기했을 때 이를 안전하게 조정할 통로 역시 작동해야 한다.
엘리자베스 스트루스 사건은 가장 취약한 아이를 보호한다는 말이 실제 제도 안에서 어떻게 구현돼야 하는지 묻는다. 누군가의 가정이 겉으로 안정돼 보인다는 이유, 한 사건이 서류상 종결됐다는 이유만으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검시 조사가 책임 소재를 밝히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의료적 위험에 놓인 아동을 끝까지 살피는 인력과 절차를 갖추는 계기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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