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선택 앞에서 교회가 지켜야 할 종교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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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선택 앞에서 교회가 지켜야 할 종교자유

종교를 믿고, 바꾸고, 거부할 자유는 추상적인 정치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자신의 양심과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특히 아동과 청소년에게 이 자유는 더욱 절실하다. 아직 보호와 돌봄이 필요한 나이에 납치, 강압적 개종, 강제결혼의 위험을 겪는다면 이는 종교 문제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안전을 침해하는 일이다.
최근 미국 의회 보좌진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서 종교자유 옹호단체들은 2019년 1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파키스탄에서 기독교인 소녀의 납치, 강압적 개종, 강제결혼 사례가 210건 기록됐다고 밝혔다. 단순한 수치로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각각의 사례 뒤에 가족과 공동체의 오랜 불안, 그리고 자신의 의사를 말하기 어려운 어린 피해자의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단체들이 특히 문제로 지적한 것은 사건 발생 자체만이 아니다. 피해 가족이 도움을 요청할 때 경찰 대응이 충분하지 않거나, 사법 절차에서 강압 아래 작성됐을 가능성이 있는 진술과 문서가 면밀히 검토되지 않는다면 보호의 마지막 장치마저 흔들린다. 법은 약한 사람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권력과 다수의 압박으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개종의 자유에는 강요받지 않을 자유도 있다
기독교 신앙은 믿음을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없다고 본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강제로 따르게 하지 않으셨고, 제자들에게도 섬김과 증언의 길을 가르치셨다. 믿음은 폭력이나 협박의 결과가 아니라, 진리를 듣고 양심으로 응답하는 관계여야 한다. 그러므로 강제 개종은 특정 종교의 권리를 둘러싼 갈등만이 아니라, 종교 자체가 지녀야 할 진정성을 훼손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종교와 신념의 자유는 기독교인만을 위한 특권이 아니다. 기독교인은 물론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 종교를 갖지 않은 이들, 자신의 신념을 바꾸거나 표현하려는 이들 모두에게 적용돼야 한다. 내가 가진 신앙의 자유를 소중히 여긴다면, 나와 다른 사람의 양심도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함께 붙들어야 한다.
파키스탄의 신성모독법을 둘러싼 우려도 이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의 존재 목적과 별개로, 그것이 소수 종교인이나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을 겨냥한 고발과 위협에 악용되고 피고발자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면 법치주의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중대한 혐의일수록 객관적 증거, 적법절차, 변호권과 신변 보호가 철저히 보장돼야 한다.
‘함께 운다’는 말의 공적 책임
로마서 12장 15절은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라고 가르친다. 이 말씀은 멀리 있는 고통을 잠시 안타까워하는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고통받는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듣고, 사실을 확인하며, 보호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관심을 기울이라는 부름으로도 읽을 수 있다.
교회와 신앙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은 피해자를 무기력한 이야기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검증된 인권 보고와 신뢰할 만한 국제기구의 자료를 살피고, 종교자유 침해를 다루는 단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또한 각국 정부가 외교와 인권 정책에서 종교적 소수자의 안전, 아동 보호, 공정한 사법절차를 실제 의제로 다루도록 관심을 표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기억할 것은, 한 소녀가 두려움 없이 집으로 돌아가고 자신의 믿음과 삶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은 특별한 호의가 아니라 마땅히 보장돼야 할 권리라는 점이다. 이웃 사랑은 가까운 사람에게만 친절한 태도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빼앗긴 선택과 안전을 회복하도록 함께 책임지는 일까지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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