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의 교회가 떠나지 않도록, 먼 곳의 신앙이 감당할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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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의 교회가 떠나지 않도록, 먼 곳의 신앙이 감당할 몫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서안지구의 기독교 공동체가 겪는 위기는 단지 한 지역의 종교 소식이 아니다. 그곳은 기독교 신앙의 기억이 깃든 땅이지만, 오늘 그 땅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신앙은 관광객이 찾는 유산이 아니라 매일의 생존과 맞닿아 있는 현실이다. 폭력과 위협, 일자리 부족, 이동 제한이 겹치면서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을 떠나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은 무겁게 들린다.
특히 2023년 10월 전쟁 이후 베들레헴의 순례와 관광 산업이 크게 위축된 일은 현지 기독교인들의 삶을 직접 흔들었다. 성지를 찾는 순례객에게 호텔, 식당, 기념품점, 운송업은 여행의 일부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현지 가정에는 생계를 지탱하는 일자리다. 순례객이 사라지고 이동이 어려워지면 수입이 끊기고, 청년들은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워진다.
신앙 공동체가 약해지는 과정은 종종 교회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보다 먼저, 일할 기회와 교육의 전망이 사라지는 데서 시작된다.
서안지구 타이베 등 기독교 마을에서 농지와 주택, 차량, 교회가 공격받았다는 현지 증언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신앙 때문에 모욕과 적대를 경험하는 일이 반복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 환영받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받는다. 십자가를 드러내는 일이 조롱이나 위협의 이유가 되는 사회에서 다음 세대에게 ‘남아 달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공동체의 이탈은 숫자의 감소만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가 공존해 온 기억이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가자지구의 성가족 가톨릭 본당과 성 포르피리우스 그리스정교회 본당이 종교를 가리지 않고 피난처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 교회는 자신과 같은 신자만 보호하는 닫힌 공간이 아니라, 위협받는 생명을 받아들이는 이웃의 집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예수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물으신 것은 누가 내 이웃인가가 아니라, 누가 고통받는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였다. 전쟁과 분열의 한복판에서 피난처가 된 교회는 그 질문에 말보다
먼저 행동으로 답하고 있다.
성지의 고통을 두고 쉽게 정치적 구호를 앞세우거나, 어느 한 집단의 고난만 선택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첫 반응은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려는 마음이어야 한다. 폭력으로 가족과 터전을 잃은 모든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되, 그 가운데서 더욱 취약한 소수 공동체가 감당하는 압박도 함께 보아야 한다. 어떤 전쟁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고난당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돌릴 수도 없다.
로마서 12장 15절의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은 멀리 있는 비극 앞에서 무력감에 머무르지 말라는 부르심이기도 하다. 성지 기독교인을 기억하는 일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관심으로 이어져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교회와 구호단체를 통해 현지의 필요를 살피고, 성지의 평화와 피난민, 남아 있는 교회, 생계가 막힌 가정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지원을 고려한다면 단체의 사업 내용과 재정 공개, 현지 협력 방식도 확인하는 것이 책임 있는 나눔의 출발이다.
성지는 돌로 된 유적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일터를 지키며, 예배와 섬김을 이어 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살아 있는 성지다. 멀리 떨어진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게 하고, 떠나지 않고 살아갈 선택이 절망이 되지 않도록 곁을 내어 주는 것이다. 서로의 짐을 지라는 갈라디아서 6장 2절의 권면은 지금도 국경을 넘어 교회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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