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온교회를 기억하는 기도, 멀리 있는 이웃의 짐을 함께 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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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온교회를 기억하는 기도, 멀리 있는 이웃의 짐을 함께 지는 일

중국 베이징 시온교회의 에즈라 진 목사가 구금 중인 교회 지도자 8명의 석방을 위해 기도를 요청했다. 이 요청은 낯선 나라에서 벌어지는 종교 뉴스 하나로만 지나치기 어렵다. 예배하고 가르치며 공동체를 돌보던 이들이 자유를 잃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가족과 교회가 감당하고 있을 불안과 공백까지 함께 생각하게 한다.
시온교회는 2007년 베이징에서 시작됐고, 2018년 예배당에 안면인식 카메라를 설치하라는 당국의 요구를 거부한 뒤 폐쇄 조치를 겪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교회는 온라인과 가정 중심의 모임으로 형태를 바꾸어 신앙공동체를 이어 왔다. 건물은 닫힐 수 있어도 성도들의 예배와 돌봄, 말씀을 향한 갈망까지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 과정이 보여준다.
다만 박해받는 교회를 말할 때 고난을 지나치게 영웅적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구금과 감시, 예배 제한은 실제 사람들의 일상과 관계를 흔든다. 지도자가 자리를 비운 교회에는 돌봄의 부담이 남고, 가족은 생계와 안전을 걱정할 수 있다. 신앙의 담대함을 칭찬하는 것과 고난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성경은 로마서 12장에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멀리 있는 고통을 내 삶과 무관한 일로 밀어두지 말라는 부름이다. 중국의 가정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일은 특정 국가를 향한 적대감을 키우는 일이 아니라, 그곳의 그리스도인과 가족들을 한 몸의 지체로 기억하는 일이어야 한다.
히브리서 13장도 갇힌 이들을 자신도 함께 갇힌 것처럼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그들의 상황을 완전히 안다고 착각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에, 단정 대신 겸손한 관심과 구체적인 중보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교회의 자유와 안전은 어느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교회가 함께 책임 있게 바라볼 과제다.
무엇을 위해 기도할 것인가
기도는 막연한 동정에 머물지 않을 수 있다. 먼저 구금된 시온교회 지도자 8명과 그 가족들의 안전, 건강, 정당한 대우와 석방을 위해 기도할 수 있다. 이름이 알려진 이들뿐 아니라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성도들과 현장 사역자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남아 있는 교회가 두려움과 분열에 휩쓸리지 않고, 서로의 필요를 돌아보며 지혜롭게 공동체를 지켜가도록 기도할 수 있다. 박해를 겪는 성도들에게 무조건 더 큰 위험을 감수하라고 말하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믿음과 생명을 함께 지킬 분별력을 구하는 기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권력을 가진 이들의 마음에도 평화와 정의를 위한 변화가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억압과 두려움의 구조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기를 구한다. 에즈라 진 목사의 요청은 중국 교회의 현실을 알리는 호소인 동시에, 편안한 환경에서 예배하는 교회가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는 조용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기도는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고난받는 이들을 잊지 않고 이름 없이 함께 아파하며,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오늘을 더 책임 있게 살아가는 일은 결코 작은 응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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