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스트루스 사건이 묻는 것, 위험은 누가 읽고 누가 막아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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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트루스 사건이 묻는 것, 위험은 누가 읽고 누가 막아야 했나

엘리자베스 스트루스의 죽음은 한 가정의 비극으로만 남겨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당뇨병을 앓던 여덟 살 아이가 인슐린을 받지 못해 2022년 1월 당뇨병성 케톤산증으로 숨졌고, 부모와 이들이 속한 종교 집단 구성원 12명은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관련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내용만으로도 아동보호와 교정감독 체계가 위험 신호를 어떻게 놓쳤는지 무겁게 돌아보게 한다.
특히 어머니 케리 스트루스는 2019년에도 딸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아동 방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엘리자베스는 위중한 상태로 병원에 도착해 혼수상태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의 생명과 직결된 의료 방치가 이미 사법 판단의 대상이 됐다는 점에서, 이후의 감독은 단순한 재범 가능성 평가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엄격했어야 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정보를 몰랐다’는 위험 평가의 공백
조사에서 핵심으로 떠오른 대목은 가석방 당시 담당자가 유죄 판결의 세부 내용이 담긴 기록에 접근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담당자는 케리가 자신이나 타인에게 즉각적 위험을 초래할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위험 평가는 당사자가 면담 자리에서 보이는 태도만으로 결정될 수 없다. 특히 피해자가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아동이라면, 과거 행위와 보호환경, 의료적 필요, 함께 사는 성인의 역할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
가석방 감독은 출소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원과 감독은 서로 반대말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 없이 이뤄지는 관대한 판단은 당사자에게도, 그 주변의 취약한 가족 구성원에게도 안전망이 되지 못한다. 범죄의 명칭만 전달되고 실제 피해 양상과 위험의 맥락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현장 담당자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할 근거 자체를 잃게 된다.
이번 사건에서 필요한 것은 특정 담당자 한 명에게 책임을 몰아가는 일이 아니다. 교정기관, 아동보호 당국, 의료기관, 경찰과 법원이 각각 알고 있던 정보를 어떤 기준으로 연결하고, 누가 최종적으로 아동의 안전을 확인할 책임을 지는지 제도 전체를 점검해야 한다. ‘심각한 아동 피해’와 관련된 이력이 있는 사람에게 통상적인 감독 수준이 충분했는지도 검토 대상이다.
신념은 아동의 치료권을 대신할 수 없다
사건에는 종교적 신념이 의료적 판단과 충돌한 정황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특정 종교나 신앙 일반에 대한 비난으로 넓혀서는 안 된다. 쟁점은 신앙의 존재가 아니라, 어떤 신념도 아이에게 필요한 생명 유지 치료를 거부할 권리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성인의 신념과 선택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의존적인 아동의 생명과 건강을 위태롭게 할 때 사회는 분명한 보호 기준을 세워야 한다.
기독교 신앙 역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서로의 짐을 지라고 가르친다. 아픈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를 연결하고, 위험을 알아챈 이가 침묵하지 않으며, 제도가 가장 약한 사람을 먼저 보호하도록 요구하는 일은 신앙과 공적 책임이 만나는 지점이다. 치료를 받게 하는 일은 믿음의 반대가 아니라 생명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엘리자베스 사건이 남긴 가장 현실적인 질문은 분명하다. 아이에게 반복적인 의료 방치 위험이 확인됐을 때, 누가 어떤 정보에 근거해 안전을 확인하는가. 기관 사이의 기록 접근권과 경보 체계는 충분한가. 그리고 위험 평가표의 ‘즉각적 위험 없음’이라는 한 줄이 실제로는 누군가의 절박한 위험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 조사의 목적은 뒤늦게 책임을 가리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다음 아이가 같은 공백 속에 남겨지지 않도록 감독과 보호의 기준을 고치는 데 있어야 한다.
댓글목록2
kingwangjjang님의 댓글
커피한잔님의 댓글
개인의 신념과 별개로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호 기준이 더 촘촘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