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 감소 통계 앞에서 한국교회가 다시 물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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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 감소 통계 앞에서 한국교회가 다시 물어야 할 것

예장 통합의 최근 교세 통계는 숫자 이상의 질문을 남긴다. 교인 수는 2024년 219만919명에서 2025년 214만910명으로 5만9명 줄었다. 2016년 이후 10년째 감소 흐름이 이어지고 있으며, 70대 이상 교인이 미성년자보다 많고 교회 열 곳 가운데 여덟 곳에는 영유아부가 없다는 현실도 함께 보고됐다.
이 통계는 어느 한 교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익숙하게 여겨 온 성장의 언어와 운영 방식이 다음 세대의 삶에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지 묻는 신호다. 해외에 사는 한인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민 1세대의 헌신으로 세워진 공동체가 자녀 세대와 새로 이주한 청년들에게 어떤 신앙의 집이 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숫자를 두려워하기보다 사람을 보아야 한다
교인 수 감소를 곧바로 교회의 실패나 신앙의 쇠퇴로 단정할 수는 없다. 통계에는 인구 감소, 고령화, 지역 이동, 소속 교회에 대한 인식 변화처럼 복합적인 사회 변화가 반영된다. 더욱이 초신자 수가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어, 단순한 감소 수치만으로 현장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영유아부가 없는 교회가 많다는 사실은 가볍지 않다. 아이가 적다는 것은 단지 주일학교 교사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부모가 교회 안에서 양육의 도움을 얻는지, 청소년과 청년이 질문을 안전하게 꺼낼 수 있는지, 세대가 함께 예배와 돌봄을 나누는지의 문제와 연결된다.
성경은 교회를 숫자로 평가하는 조직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서로 다른 지체가 한 몸을 이룬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어린 세대가 적다고 해서 그들을 교회의 주변부에 두어서는 안 되며, 고령의 성도가 많다고 해서 그들의 경험을 변화의 걸림돌처럼 취급해서도 안 된다. 한 세대의 필요를 다른 세대의 부담으로 돌리는 순간 공동체는 약해진다.
고령화는 부담만이 아니라 책임의 자리다
70대 이상 성도가 미성년자보다 많다는 현실을 위기로만 읽는 태도도 경계할 만하다. 오랜 세월 기도와 봉사로 교회를 지킨 어르신들은 사라져야 할 과거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 신앙의 기억을 전할 중요한 증인이다. 시편 92편은 늙어도 결실한다는 소망을 말한다. 이는 나이가 들면 모두 같은 방식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아니라, 인생의 모든 계절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고 쓰임받을 수 있다는 고백이다.
다만 그 경험이 다음 세대를 통제하는 권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젊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믿음의 부족으로만 판단하기보다, 그들이 겪는 주거 불안과 경쟁, 관계의 단절, 문화적 거리감을 진지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 신앙의 본질을 지키는 일과 낡은 관행을 고집하는 일은 같지 않다.
목회자의 수보다 돌봄의 연결을 점검할 때
전체 목사 수는 7명 늘었지만 시무 목사 수는 감소세라는 통계도 구조적 과제를 보여 준다. 목회자 양성과 배치, 작은 교회의 지속 가능성, 지역과 세대에 맞는 사역의 형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해답을 인력 숫자나 프로그램 확대로만 찾으면 또 다른 피로를 만들 수 있다.
교회가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복음이 삶을 돌보는 방식이다. 갈라디아서 6장은 서로의 짐을 지라고 권한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을 실제로 돕고, 외로운 청년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병들고 나이 든 성도의 일상을 살피는 교회라면 통계의 하락선 속에서도 신뢰를 쌓을 수 있다.
교인 감소는 교회를 향한 조롱의 근거가 아니라 회개와 분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회개는 과거의 규모를 되찾기 위한 조급한 전략이 아니라, 교회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다시 하나님 앞에서 묻는 방향 전환이다. 한국교회와 호주 한인 교회가 다음 세대를 붙잡기 전에 먼저 그들의 삶 곁으로 다가갈 때, 공동체의 미래도 조금 더 정직하게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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