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했다면 사과’로는 끝나지 않는 호주의 인종 언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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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했다면 사과’로는 끝나지 않는 호주의 인종 언어 논쟁
원네이션 대표 폴린 핸슨이 호주 원주민을 ‘지구상에서 가장 원시적인 인종’이라고 표현한 뒤,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꼈다면 사과한다는 취지로 입장을 밝히면서 정치권의 인종 갈등 논쟁이 다시 거세졌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해 9월 공개된 팟캐스트에서 나왔으며,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섬 주민의 역사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에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는 과정에서 사용됐다.
논란의 핵심은 단지 거친 단어 하나에 있지 않다. ‘원시적’이라는 표현에는 서로 다른 공동체를 발전의 한 줄 세우기에 놓고 평가하던 오래된 시선이 담겨 있다. 호주 원주민 사회는 수만 년에 걸쳐 이 땅에서 언어, 친족 체계, 토지 관리 방식, 예술과 지식을 이어 온 다양한 공동체다. 이를 하나의 낙후된 집단처럼 묶는 말은 역사적 현실을 지우고, 오늘의 차별 경험까지 가볍게 만들 수 있다.
핸슨 의원은 상대를 상처 입히려는 의도는 없었고 표현이 서툴렀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러나 공적 인물의 언어는 개인적 의도만으로 평가되기 어렵다. 특히 한 정당의 대표이자 상원의원이라면, 자신의 말이 어떤 사회적 인식을 강화하고 누구에게 부담으로 돌아가는지까지 책임져야 한다. ‘불쾌했다면 미안하다’는 말이 비판을 누그러뜨리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처의 원인을 발언 내용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반응으로 돌리는 듯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과가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왔다. 원주민 문제를 둘러싼 현실과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일부 상원의원들은 견책 결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견책이 법적 처벌은 아니지만, 의회가 어떤 언어와 태도를 공적 기준 밖으로 보는지 공식적으로 밝히는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다.
물론 정치권의 견책만으로 사회의 인종 갈등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런 사안은 지지층 결집을 위한 진영 대결로 빠르게 소비되기 쉽다. 누군가는 표현의 자유를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차별 없는 공론장의 책임을 말한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타인을 향한 편견을 사실처럼 유통할 권리와 같지 않다. 자유로운 발언이 가능하려면, 그 발언이 낳는 결과에 대한 비판과 반론도 똑같이 보장돼야 한다.
호주 사회가 더 깊이 물어야 할 것은 정치인이 사과 문구를 얼마나 매끄럽게 고르느냐가 아니다. 학교에서 원주민 역사를 왜 배우는지, 국가의 제도와 일상 언어 속에 남아 있는 배제의 흔적을 어떻게 이해할지, 그리고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시민이 어떤 존중의 언어로 대화할지를 묻는 일이다.
공적 언어는 사회의 경계를 만든다. 정치 지도자의 말은 특히 그렇다. 분열을 부추기는 짧은 문장은 주목을 끌 수 있지만,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는 훨씬 더 긴 시간과 분명한 책임이 필요하다. 이번 논쟁이 또 하나의 정치적 소음으로 사라지지 않으려면, 사과의 형식보다 발언이 드러낸 인식 자체를 성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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