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로 잡힌 노예들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됐다. 아프리카 노예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우간다 북부의 아춀리족 학생들이 1850년대 노예 집결지에 대해 언급했다.
이후 한 의대 학생과 함께 아춀리 지역 파티코를 방문한 기자는 아랍계 노예 상인들이 노예들을 모으고 분류하던 장소를 확인했다. 19세기 초중반부터 아랍계 상인들은 나일강 상류를 따라 교역을 시작했으며, 상아와 곡물의 교역에서 사람을 사냥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아춀리의 남자들은 어린이와 노인, 병자들을 산으로 피신시키고 저항했으나, 무기를 가진 상인들에게 밀려 대부분의 주민들이 노예로 붙잡혔다. 이곳에는 붙잡힌 사람들을 가두던 돌로 만든 공간과 저항한 사람들을 처형한 처형석, 탈출을 막기 위한 도랑과 참호, 곡물 저장고, 무기고가 있었다. 또한, 붙잡힌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돌아오지 않을 문'도 존재했다.
노예가 된 사람들은 나일강 상류를 따라 아랍 지역으로 팔려가거나, 나일강 하류를 통해 빅토리아를 지나 잔지바르 섬으로 끌려갔다. 잔지바르의 아름다움과는 대조적으로, 스톤 타운의 좁은 골목에서 과거 노예 시장이었던 Mkunazini 노예시장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아프리카 전역에서 끌려온 노예들이 물건처럼 팔려나갔던 사실이 전해진다.
이곳에 세워진 Christ Church Anglican Cathedral은 과거 노예 시장의 자리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교회 제단이 세워진 곳은 노예들을 매질하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 교회는 리빙스턴의 노예 반대 운동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1873년 그가 사망한 해에 잔지바르 노예 시장이 문을 닫았다.
교회 옆에는 노예들을 감금했던 지하 감금실이 남아 있으며, 당시의 역사와 사진, 자료들이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스톤 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Mangapwani에도 노예 매매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곳은 노예들을 숨겨두거나 감금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잔지바르의 노예 매매는 1873년 영국 내 노예 반대 운동으로 공식 폐지되었으나, 실제 노예 제도가 사라진 것은 그보다 한참 후였다. 기자는 잔지바르를 떠나며 선교와 인간 해방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떠올렸다.


사진제공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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