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정치에 동원될 때, 헌법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 시사컬럼

본문 바로가기

시사컬럼

소모임
마이홈
쪽지
맞팔친구
팔로워
팔로잉
스크랩
TOP
DOWN

군이 정치에 동원될 때, 헌법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profile_image
두날개로
2026-09-21 22:08 94 0 15 0

본문

군이 정치에 동원될 때, 헌법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군이 정치에 동원될 때, 헌법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12·3 내란 가담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군 지휘관들에게 중형이 선고된 것은 몇몇 개인의 일탈을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울중앙지법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징역 18년,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면서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병력 투입, 정치인 체포조 운영, 직권남용의 책임을 무겁게 판단했다. 아직 1심 판단으로 향후 항소 절차가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이번 판결이 던지는 헌법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군의 존재 이유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데 있다. 그러나 무력을 보유한 조직이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나 권력 유지에 동원되는 순간, 군은 국민의 안전을 위한 공적 기관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헌법과 법률은 군의 정치적 중립을 단순한 조직 운영 원칙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을 지탱하는 안전장치로 다룬다.

국회와 선관위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헌법기관이다

재판부가 특히 엄중하게 본 대목은 헌법기관의 기능을 멈추게 하거나 무력화하려 한 행위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가 법률과 국가적 의사를 결정하는 공간이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의 공정성과 국민의 정치적 선택을 보호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들에 병력이 투입되고 정치인의 신체 자유가 위협받는다면, 피해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만 돌아가지 않는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투표권과 대표를 통해 국가 운영에 참여할 권리까지 흔들린다.

민주주의는 갈등이 없어서 유지되는 제도가 아니다. 선거 결과와 정책, 권력의 행사 방식을 두고 격렬하게 다투더라도, 그 다툼을 헌법과 법률의 절차 안에서 해결한다는 약속 때문에 유지된다. 정치적 혼란이나 국가적 위기가 닥쳤다는 이유만으로 그 절차를 군사력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위기일수록 제도를 지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은 다시 드러냈다.

명령과 책임 사이에서 군인은 무엇을 지켜야 하나

군 조직은 명령 체계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원칙이 명백히 위헌적이거나 불법적인 지시까지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지휘관에게 권한이 클수록 그 권한을 어디까지 행사할 수 있는지 판단할 책임도 커진다. ‘윗선의 지시였다’는 말은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한 면책 사유가 되기 어렵다.

이번 재판에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는 징역 9년이 선고됐고, 재판부는 양심선언과 자술서 제출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 이는 불법 행위의 책임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조직 내부의 잘못을 드러내고 사실 규명에 협력하는 일이 민주적 통제와 재발 방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침묵과 복종만을 충성으로 여기는 조직문화는 결국 조직 자신과 국가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

해외 한인사회에도 낯설지 않은 질문

호주에 사는 한인들에게 한국의 헌정질서 문제는 먼 나라의 정치 뉴스만은 아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신뢰는 재외동포의 삶,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현지의 시선, 다음 세대가 한국과 맺는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특히 호주는 문민통제, 독립된 선거 제도, 사법 절차의 중요성을 공적 가치로 강조해 온 사회다. 한국 역시 권력의 크기와 무관하게 헌법적 한계를 지켜야 국제사회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중형 선고만으로 군의 정치 개입 위험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은 군을 정쟁의 도구로 끌어들이지 않아야 하며, 군 내부는 불법 명령을 걸러낼 교육·감찰·보고 체계를 실질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시민사회 또한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일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기준을 지켜야 한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보복이나 진영의 승패가 아니다. 총을 가진 국가기관이 헌법 위에 설 수 없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데 있다. 군이 정치로부터 거리를 지킬 때 군의 명예도 지켜지고, 시민의 자유와 국가의 안정도 함께 보호된다.


@호주코리안닷컴 편집실
15 0
로그인 후 추천 또는 비추천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47 건 - 1 페이지

선거비용 상한, 정치의 목소리를 누구에게 돌려줄 것인가

선거비용 상한, 정치의 목소리를 누구에게 돌려줄 것인가 호주 정치자금 제도 개편 논쟁은 숫자 하나를 정하는 행정 절차가 아니다. 선거에서 누가 더 많은 광고를 내고, 더 많은 유권자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규칙에 관한 문제다. 선거운…

두날개로 6시간 24분전 92 14

알고리즘 선택권은 검열인가, 이용자 주권의 문제인가

알고리즘 선택권은 검열인가, 이용자 주권의 문제인가 호주 정부가 소셜미디어 이용자가 추천 알고리즘을 끄거나 그 작동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이를 ‘자유로운 발언에 대한 검열’로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논쟁의 표면에는 표현…

두날개로 7시간 33분전 89 2 12

1886년 법을 기억하는 일, 호주 역사교육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1886년 법을 기억하는 일, 호주 역사교육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호주의 학교 역사교육에서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만이 아니다. 어떤 역사를 충분한 맥락과 언어로 가르치고, 어떤 역사는 주변부로 밀어내 왔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빅토리아주가 1886년 제정…

두날개로 7시간 38분전 91 1 13

탄소를 줄여도 남는 격차, 기후위기의 마지막 피해자는 누구인가

탄소를 줄여도 남는 격차, 기후위기의 마지막 피해자는 누구인가 온실가스 배출을 순제로로 낮추는 일은 기후위기 대응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그러나 배출 감축이 곧바로 모든 지역에 같은 회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멜버른대학교 앤드류 킹 박사 연구팀의 분석은 이 불편한 사실…

두날개로 18시간 25분전 93 2 13

AI 낙관론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호주의 생산성과 주택 물가

AI 낙관론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호주의 생산성과 주택 물가 인공지능은 호주 경제의 생산성 정체를 풀 열쇠로 자주 거론된다. 정부의 장기 경제 전망에도 AI가 산업과 노동 방식을 크게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돼 있다. 그러나 미셸 불록 호주중앙은행(RBA) 총재가 던진…

두날개로 18시간 27분전 94 1 15

북핵 해법의 현실론, 제재 완화 논의가 던지는 어려운 질문

북핵 해법의 현실론, 제재 완화 논의가 던지는 어려운 질문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중단과 대북제재 완화를 맞교환하는 단계적 접근을 현실적 대안으로 언급했다. 당장의 완전한 비핵화만을 협상의 출발선으로 삼을 경우, 협상 자체가 멈춰 있는 동안…

두날개로 19시간 36분전 96 16

스마트 안경 금지, 기술을 막기보다 공공의 신뢰를 지키는 일

스마트 안경 금지, 기술을 막기보다 공공의 신뢰를 지키는 일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 안경은 더 이상 낯선 미래 기술이 아니다.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지 않아도 사진과 영상 촬영이 가능하고, 일부 기능은 음성 명령만으로 작동한다. 편리함의 영역에 있던 기기가 수영장과…

두날개로 2026.09.22 92 1 14

출산의 순간까지 이어지는 구금, 호주가 답해야 할 인권의 경계

출산의 순간까지 이어지는 구금, 호주가 답해야 할 인권의 경계 호주에서 출산을 앞둔 여성 수감자에게 수갑을 채우는 관행을 금지하자는 법안이 상원에 제출됐다. 리디아 토르프 상원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출산 과정에서의 신체 구속을 예외 없이 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

두날개로 2026.09.22 94 15

알바니지 총리가 뉴욕에서 꺼낸 기후위기, 호주 전환의 시험대는 국내에 있다

알바니지 총리가 뉴욕에서 꺼낸 기후위기, 호주 전환의 시험대는 국내에 있다 뉴욕 기후 주간 무대에서 앤서니 알바니지 총리가 강조한 메시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기후위기는 먼 미래의 추상적 위험이 아니라 이미 호주의 일상과 경제, 지역사회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며,…

두날개로 2026.09.22 92 14

저출산 해법, ‘아기 보너스’와 보편적 보육 사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저출산 해법, ‘아기 보너스’와 보편적 보육 사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호주의 출산율이 2065~66년 1.34명까지 낮아질 수 있다는 2026 세대 간 보고서의 전망은 단순한 인구 통계 이상의 질문을 던진다. 약 40년 뒤에는 한 해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

두날개로 2026.09.21 92 14

폭력 피해 지원의 대기는 행정 문제가 아니라 안전의 공백이다

폭력 피해 지원의 대기는 행정 문제가 아니라 안전의 공백이다 가정·가족폭력과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지원 서비스의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뉴사우스웨일스(NSW)에서 다시 제기됐다. 그린당의 아비가일 보이드 의원은 현장 서비스들이 만성적인 자금 부족으로 전화를 제때 …

두날개로 2026.09.21 96 3 17

군이 정치에 동원될 때, 헌법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군이 정치에 동원될 때, 헌법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12·3 내란 가담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군 지휘관들에게 중형이 선고된 것은 몇몇 개인의 일탈을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서울중앙지법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징역 18년,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게 징역 1…

두날개로 2026.09.21 95 15

안보리 도전, 호주가 세계 무대에서 증명해야 할 것은

안보리 도전, 호주가 세계 무대에서 증명해야 할 것은 호주가 2029~203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선거에 공식 출마했다. 투표는 2028년 중반 열리며,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3분의 2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현재 핀란드도 후보로 나선 상태다. 아…

두날개로 2026.09.21 92 14

카드 수수료 폐지, ‘공짜 결제’가 아니라 투명한 가격을 묻는 변화

카드 수수료 폐지, ‘공짜 결제’가 아니라 투명한 가격을 묻는 변화 호주에서 비자·마스터카드·이프트포스(Eftpos) 결제 때 계산대에서 별도로 붙던 카드 추가 수수료가 10월 1일부터 사라질 예정이라는 소식은 많은 소비자에게 반가운 변화다. 커피 한 잔이나 소액 물건…

두날개로 2026.09.21 97 2 16

성폭력 신고 최고치, 국가계획은 왜 체감 변화를 만들지 못했나

성폭력 신고 최고치, 국가계획은 왜 체감 변화를 만들지 못했나 호주가 여성과 아동을 향한 폭력을 끝내기 위한 두 번째 국가계획을 준비하는 시점에, 첫 계획의 성적표는 무겁다. 최근 가정·성폭력 관련 보고서는 기존 계획이 현실을 바꾼 정도가 제한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두날개로 2026.09.21 96 3 17
게시판 전체검색
상담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