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멍에 (창 4:1–15)
교회의 쇄신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새롭게 할 것인가 영국성공회 총회 새 구성원 선거를 앞두고, 교회 안의 여러 전통이 참여한 연합체 ‘얼라이언스’가 출범했다. 이들은 영국성공회가 성경과 역사적 기독교 가르침에 다시 깊이 뿌리내려야 하며, 결혼에 관한 전통적 교리를 지…
교인 감소 통계 앞에서 한국교회가 다시 물어야 할 것 예장 통합의 최근 교세 통계는 숫자 이상의 질문을 남긴다. 교인 수는 2024년 219만919명에서 2025년 214만910명으로 5만9명 줄었다. 2016년 이후 10년째 감소 흐름이 이어지고 있으며, 70대 이상…
가족법 논란이 드러낸 것, 소수자 보호는 ‘협의’에서 시작된다 파키스탄 신드주 의회가 기독교인의 결혼, 이혼, 자녀 양육 등을 다루는 ‘2026 신드 기독교 가족법안’을 심의에 넘기면서, 법안의 내용 못지않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가톨릭교…
점령지의 예배를 통제할 때, 신앙은 권력의 도구가 된다 전쟁은 영토와 군사력의 충돌로만 기록되지 않는다. 사람이 어느 언어로 말하고, 어떤 공동체와 연결되며, 누구와 함께 예배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전쟁의 한복판에 놓인다. 영국 정부의 종교 또는 신념의 자유 특사인 데…
박태연 선교사 재판이 묻는 것, 종교 자유와 함께 짊어질 기도의 책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오랫동안 어린이들을 섬겨 온 한국인 박태연 선교사가 이민 관련 혐의로 구금된 가운데, 통역사 불참으로 연기됐던 재판이 다시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 선교사는 지난 1…
석방 이후에도 남는 질문, 중국 미등록 교회와 신앙의 자유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미등록 교회를 이끌어 온 롄쉬량 목사가 구금 생활을 마치고 지난 9월 5일 귀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귀가는 가족과 교회 공동체에 분명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그러나 석방이 곧 사건의 …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고 그들 각자가 섬기는 신이 있지만 어느 종교도 자기들의 신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온 천지만물과 우주만상의 창조주이시고 온 역사의 주인이시면서도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자족하시는 전지전능의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엘리야는 깊은 절망의 자리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불이 제단 위에 임하는 놀라운 광경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잠시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다”라고 외쳤지만, 그 고백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곧 다시 우상숭배의 자리로 돌아가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우리는 언제나 ‘코람 데오’의 신앙을 간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말을 나눌 때, 그 대화 자리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면 우리의 말은 훨씬 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말에는 능력이 있어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희망을 주는 말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세상 학문을 깊이 파고든다고 해서 저절로 깨달아지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될 때, 비로소 그 눈이 열려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신…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크리스천처럼, 우리 인간도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벗을 수 없는 짐—그것은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원죄의 짐, 삶 속에서 반복해 짓는 자범죄의 짐, 그리고 인생의 고통과 상처에서 오는 짐입니다. …
요게벳은 모세의 어머니였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녀가 모세를 낳던 시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고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바로가 히브리 산파들에게 남자아이는 죽이고 여자아이는 살려두라는 끔찍한 유아 살해 명령을 내린 때였습니다. 요게벳은 아이를 낳고 그 사랑스러운 …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은 그 약속을 일상 속에서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우리는 아브람의 삶을 통해 그 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약속의 사람이 되었고, 참된 예배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반면 롯은 겉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명목상의…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마음을 두고 바라보신 대상은 객과 고아, 과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적 약자였고, 자신을 지킬 힘조차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객과 고아와 과부는 소외되고 버려지고, 가난하고 병든 모든 약자들을 대표합니다.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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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