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전력의 주도권, 가스에서 배터리로 옮겨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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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전력망의 가장 까다로운 시간은 해가 지는 저녁이다. 태양광 발전량은 빠르게 줄어드는데 가정과 사업장의 전력 사용은 여전히 높다. 이른바 오후 5시부터 8시 사이의 피크 시간대에 그동안 가스 발전이 중요한 빈자리를 메워 온 이유다.
최근 EnergyEdge 분석은 이 시간대의 가스 발전량이 8월까지 1년 동안 67% 줄었다고 봤다. 보도에 따르면 같은 시기 저녁 전력망에서 조정 가능한 전력 수요 가운데 배터리가 담당한 비중은 49%에 이르렀다. 2020년의 0.4%와 비교하면, 단순한 설비 증가를 넘어 전력망 운영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핵심은 배터리가 전기를 ‘새로 생산’하는 설비가 아니라는 점이다. 낮에 태양광 등으로 남는 전력을 저장했다가 수요가 몰리는 시간에 내보내며, 발전과 소비의 시간차를 줄인다. 대규모 배터리 단지와 정부 보조를 통해 보급된 약 50만 대의 가정용 배터리가 함께 작동할 때, 저녁마다 가스 발전소를 급히 가동해야 하는 횟수와 규모를 낮출 여지가 생긴다.
이는 탄소 배출 문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스 가격과 공급 여건의 영향을 크게 받는 전력 시스템에서, 피크 시간대의 가스 의존도를 줄이는 것은 전기요금의 급격한 변동 위험을 낮추는 데도 의미가 있다. 특히 가스 발전은 평소보다 수요가 급증할 때 값비싼 전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곤 한다. 배터리가 이 구간을 일부 대체하면 전체 시장 가격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배터리 확대를 곧바로 전기요금 인하나 완전한 에너지 독립으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 배터리는 저장 용량과 방전 지속 시간이 제한돼 있으며, 며칠간 태양광·풍력 발전이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까지 혼자 해결하기는 어렵다. 송전망 보강, 발전원 다변화, 수요 관리, 장기 저장 기술, 예비 전력 확보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가정용 배터리도 같은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 보조금이 보급을 앞당길 수는 있지만, 각 가정의 소비 패턴, 태양광 설비 규모, 계약 중인 전기요금제, 설치비와 유지 조건에 따라 경제성은 달라진다. ‘배터리를 설치하면 무조건 이득’이라는 식의 홍보보다, 저녁 사용량이 얼마나 되는지와 잉여 태양광이 실제로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지원 제도와 접속 규정, 판매 조건은 바뀔 수 있으므로 계약 전에는 정부와 전력 소매업체, 설치업체의 최신 조건을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럼에도 이번 변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호주의 에너지 전환은 거대한 발전소를 무엇으로 바꿀지에만 달려 있지 않다. 낮에 생산된 전기를 언제,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쓸 것인지가 이제 전력망의 중심 질문이 됐다. 배터리는 그 질문에 대한 유력한 답이지만, 신뢰할 수 있고 공정한 전력 체계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축일 뿐이다.
앞으로 주목할 지점은 배터리 비중이 더 높아지는지보다, 그 확대의 혜택과 비용이 누구에게 돌아가는가이다. 자가 태양광과 배터리를 설치할 여력이 있는 가구뿐 아니라 임차인, 아파트 거주자, 저소득 가구도 안정적이고 부담 가능한 전력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가스 의존도 감소는 반가운 신호지만, 에너지 전환의 성패는 숫자 뒤에 있는 접근성과 신뢰성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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