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장은 인류 역사에서 혐오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도 시민들이 거주하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로 지정된다. 제정 로마 시대에도 이러한 경향이 있었으며, 로마의 중심지인 베네치아 광장에서 남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외곽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이 사형장은 사도 바울과 많은 기독교인의 순교지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세 개의 교회가 있다. 왼편에는 수도회 건물이 있고, 오른편에는 천국의 계단 교회가 있으며, 이 교회의 지하 감옥에는 사도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 갇혀 있었던 곳이 있다. 또한, 60m를 직진하면 또 다른 교회가 있으며, 그 앞면에는 '여기가 사도 바울이 순교한 장소'라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이 교회는 5세기에 성전 건물이 세워졌으나, 노후화로 인해 1599년에 초기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끝에 있는 돌기둥이 바울의 목을 얹고 칼로 내려쳤던 원래의 돌기둥으로, 한쪽이 심하게 마모된 상태이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돌기둥에서 목이 잘렸음을 나타내는 증거로 여겨진다.
사도 바울은 평소 로마를 방문하고 싶어했으나 기회가 없었다.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 유대인들에게 고소당해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하여 죄수로 로마에 가게 되었다. 바울은 시민권을 가진 인물로, 로마 황제에게 재판받을 권리가 있었다.
로마로 가는 길은 고통스럽고 위험한 여정이었다. 우기가 시작되는 10월 초에 떠나는 긴 여정 중 유라굴로라는 태풍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바울은 예언대로 멜리데 섬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몇 번의 기적을 행하셨다. 바울이 독사에게 물렸으나 아무렇지도 않았고, 섬의 주민들은 그를 신으로 여겼다.
바울은 멜리데 섬에서 병든 사람들을 고치며 친절한 대접을 받았고, 이후 보디올에 도착했을 때 성도들이 그를 정중히 초대했다. 바울은 한 주간을 보디올의 성도들과 함께 보냈고, 이후 로마를 향해 떠났다. 로마까지의 거리는 약 210km로, 일주일 이상 걸리는 여정이었다.
바울은 기원전 312년 로마의 집정관 아피우스가 건설한 군사 도로를 따라 죄수의 신분으로 걸었다. 이 길을 통해 바울은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며칠 후 일행은 압비오 광장과 트레스 타베르나에 도착했다. 이곳은 로마에서 52km 떨어진 지역으로, 현재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 로마의 성도들이 바울을 환영하기 위해 50여 km를 걸어온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만남을 통해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


사진제공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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