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통합 총회장을 역임한 림인식 원로목사가 101세의 나이로 6월 18일 오전 7시 20분경 노환으로 별세했다. 그는 한국 교회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로, 그의 생애와 업적은 한국 장로교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림인식 목사의 생애

림인식 목사는 1925년 만주 봉천에서 태어나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수료한 후 장로회신학대학교와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할아버지의 기도와 신앙심을 통해 성장하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경험을 통해 목회자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1951년 이승만 대통령의 특명으로 종군목사 제도가 시작되자, 그는 자원하여 초창기 군목실장으로 3년간 복무했다.

목회 활동과 교회 성장

림 목사는 1947년 평양 창동교회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여 부산 서북교회, 대구 영락교회, 서울 노량진교회에서 담임목사로 활동했다. 특히 노량진교회에서는 32년간 담임으로 시무하며 교회의 놀라운 성장을 이끌었다. 그는 "나 없는 오로지 목회 우선"이라는 신념으로 헌신하며, 하나님께서 맡긴 사역에 충실했다.

총회에서의 역할

그는 경기노회 교역자회장, 경기노회장, 군목위원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교단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68대 총회장으로서 교단의 비전을 제시했다. 또한 북한선교위원장, 세계선교위원장 등으로서 한국 교회의 선교 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회 봉사와 교육 기여

림인식 목사는 사회 봉사와 교육에도 힘썼다. 숭실대학교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교육 발전에 기여했으며, 성남 제1실업학교 이사장으로 난민촌 아동 교육에 앞장섰다. 그는 북한 동포 돕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이러한 활동은 그의 신앙과 애국심을 반영한다.

마무리

림인식 목사의 유가족으로는 배우자 故 최수복 사모와 장남 림형석 목사, 차남 림형천 목사, 삼남 림형진 장로, 장녀 림효선 권사, 차녀 림효신 권사가 있다. 그의 빈소는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위로예배는 6월 18일 오후 6시에, 입관예배는 6월 19일 오후 4시에, 장례예배는 6월 20일 오전 8시에 노량진교회 본당에서 진행된다. 장지는 노량진교회 소망공원이다.

참고자료: christian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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