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 칼럼] 왜 나를 선택(구원)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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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회 연결
본문

어느 지인 목사님께서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아들이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그룹 필기와 면접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3개월간의 연수 과정에서 탈락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유는 지식은 풍부했지만, 인격과 교양, 그리고 사회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제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명기 8:1~10의 교훈: 신명기 말씀은 신앙인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에 대해 우리는 여러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들어왔습니다.
광야는 단순히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의 시간이 아니라, 신앙을 훈련하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훈련과 변화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교회의 훈련 과정(예배, 제자훈련, 봉사, 고난의 체험 등) 역시 성도의 마음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지를 점검하는 역할을 합니다.
고난과 결핍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검증하고 성숙하게 하시는 도구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이 본문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오늘날 성도에게 고난을 통한 훈련, 겸손한 의존, 말씀 중심의 삶, 공동체적 신앙의 기억을 실천하도록 요구합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함을 보여줍니다.
구원의 목적: 저는 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왜 나를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셨을까?
왜 구원을 주셨을까?” 그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이는 너희로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이스라엘이 선민으로 선택된 이유도 단순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함이 아니라, 세계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인격과 교양, 사회성 또한 필수적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꿰뚫고 있어도 빛과 소금의 역할, 성령의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단순한 종교인일 뿐입니다.
잘못 이해되는 구원: 많은 성도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는 말씀을 단순히 교회 출석이나 직분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믿음이란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삶 전체를 예수께 맡기는 전인적 신뢰를 뜻합니다.
구원은 내 능력이나 조건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또한 가정 안에서 한 사람의 신앙이 온 가족의 구원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본을 보이는 삶이 중요합니다.
초대교회의 본보기: 초대교회의 중심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찬양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공동체는 삶 전체가 예배가 되었고, 그 결과 세상 사람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사랑과 나눔, 겸손과 진실한 교제가 이방인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얻게 했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인간의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날마다”라는 표현은 구원이 단회적 사건이 아니라 계속해서 확장되는 역사임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씨를 뿌리고 물을 줄 뿐,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고전 3:6).
결론
교회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역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가 세상 속에서 신뢰와 존경을 얻는 길은 말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의 실천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은 인간의 힘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성령의 역사에 달려 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목적도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2)” 하신 뒤 십계명을 주신 데에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며 살아가도록 주신 법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저 종교적 이름만 가진 신자에 불과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신약 성도에게 중요한 말씀입니다.
구약의 제사가 죽은 제물이었다면, 신약의 성도는 살아 있는 제물로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몸’은 단순히 육체가 아니라, 생각, 행동, 관계를 포함한 전 존재를 의미합니다.
신자는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곧 마태복음 28:19~20과 사도행전 1:8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한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의 모습입니다.
만약 구원(선택)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른다면 종교인으로서 바다에서 돛이 부러진 배와 고장 난 자동차와 무엇이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국제국호개발기구 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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