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재 선교사가 아프리카에서의 교육 선교 경험을 바탕으로 노예 매매의 역사와 기독교 선교의 관계를 조명했다. 그는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시작된 '노예 여행'을 통해 탄자니아 잔지바르, 미국 사바나와 켄터키를 거쳐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이 선교사는 노예 매매의 참혹한 역사에 대해 묵상하며, 기독교 선교가 이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탐구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의 말을 인용하며,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왔을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투투 대주교는 "유럽인들이 처음 왔을 때 그들의 손에는 성경이 있었고, 우리 손에는 땅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윤재 선교사는 기독교 선교가 노예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선교 현장에서 부딪혔던 선교적 어젠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18세기 후반부터 교회 내에서 노예 매매가 성경적이지 않다는 반성과 함께 강력한 노예 폐지 운동이 시작되었음을 언급했다. 이 운동의 결과로 1807년 영국에서 노예 무역 제도가 폐지되었고, 이는 CMC(Church Missionary Society, 영국 복음주의 선교회)의 출발점이 되었다.
리빙스턴은 1841년 아프리카에 도착하여 노예 매매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노예 제도 폐지를 주장하며, 이를 위한 3Cs 전략을 제시했다. 이 전략은 기독교 복음의 전파, 상업을 통한 부의 창출, 교육과 문명의 확산을 포함한다.
해닝턴은 1882년 아프리카에 발을 디딘 후, 1885년에 다시 아프리카를 찾았다. 그는 노예들이 끌려갔던 길 대신 생명의 길을 만들고 싶어 했으며, 그의 마지막 말은 "내가 부간다로 가는 길을 내 피로 샀다고"였다.
이윤재 선교사는 해닝턴의 죽음 이후 아프리카 선교가 변화하기 시작했음을 언급하며, 우간다에서 가톨릭과 성공회가 뿌리내리고, 교회가 자립과 자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1930년대 동아프리카 부흥운동이 일어난 배경을 설명하며, 이 운동의 주역이 평신도들이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윤재 선교사는 현대판 각종 노예 제도와 싸워야 하며, 복음 전파는 인간의 전인적 해방에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비천한 노예요, 영광스러운 노예 해방자이다"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피로 산 영혼들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선교의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제공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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