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예술은 종종 신앙과 무관한 세속적 유희로 간주되거나, 사적 여가와 장식물 정도로 가볍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교회 내에서는 말씀과 기도, 선교와 봉사가 본질적인 사명으로 강조되지만, 예술은 종종 변방의 곁가지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인들은 찬송가를 통해 피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고백하지만, 세상 문화와 예술 앞에서는 ‘문화를 배척하는 그리스도’라는 협소한 틀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이원론적 경계심은 교회 밖 문화를 세속의 오염으로만 바라보게 만든다.
하나님은 종교적 영역뿐 아니라 피조 세계 전체의 주권자이시며, 그분의 통치와 무관한 중립 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왜 예술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심미적 취향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상처 입은 세계에서의 삶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예술은 하나님의 창조성을 반영하며, 인간에게 부여된 ‘문화명령’을 수행하는 구체적 실천으로 여겨진다. 하나님은 세상을 완제품으로 끝마치지 않고,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품은 상태로 창조하셨으며, 인간을 ‘하위 창조자’로 부르셔서 피조 세계를 경작하고 돌보게 하셨다.
예술가는 물감과 모니터, 물질과 오브제를 다루며, 그들의 작업은 척박한 땅을 갈아 생명의 정원으로 일구는 청지기의 노동으로 비유된다. 한스 로크마커는 예술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안에서 인간이 남긴 문화적 집적물로 정의하며, 신앙을 영적 영역에만 가두는 이원론을 배격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영혼뿐 아니라 육체와 물질, 색채와 선, 소리와 질감을 모두 포괄하는 선한 창조 세계이다. 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피조 세계의 질서와 조화, 숙련된 솜씨를 감사함으로 기뻐하는 삶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로크마커는 기독교적 실용주의를 경계하며, 예술은 전도의 도구나 교리를 설명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때만 정당성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하나님이 창조 세계에 부여하신 미적 법칙에 따라 정직하게 조형된 작품은 그 자체로 존재할 이유와 가치를 지닌다.
예술은 타락한 세계의 부조리와 상처를 폭로하며,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예술을 통해 현대인의 실존적 환부를 목격해야 한다. 시각예술은 사상과 세계관의 결정물로, 예술품을 감상하는 것은 시대의 영적 태도와 인간관을 통찰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술을 분별하는 안목을 가져야 하며, 바람직한 분별은 작품이 인간을 값싼 쾌락으로 몰아넣는지, 아니면 존재의 신비를 대면하게 하는지를 꿰뚫어 보는 영적 통찰이어야 한다. 정직한 분별을 거친 예술은 구속과 회복의 지평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결국 기독교적 시각에서 예술품의 이해와 향수는 대립하지 않고, 하나의 온전한 실천으로 수렴된다. 예술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시대정신과 영적 실재를 직시하는 비판적 성찰이자,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기뻐하는 전인격적 인간성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예술의 깊은 탄식과 부름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사진제공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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