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재판을 기다리며 구금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의 고소 사건은 유대인들의 종교 문제로 인해 심각하게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아그립바 왕과 총독 베스도, 새로 부임한 총독 버니는 바울이 사형이나 결박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바울은 구금 중에도 많은 자유를 허용받아 손님을 만나고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셋집이 로마에 두 곳 남아 있습니다. 성서학자 렌스키는 바울이 62년에 로마에 도착해 64년에 방면되었다고 주장합니다. 95년경 로마의 주교 클레멘트는 바울이 온 세상의 의를 가르치고 서방의 끝까지 다다랐다고 기록했습니다.
바울의 편지인 디도서는 그레데를 언급하며, 그곳은 바울의 전도 여행에 기록되지 않은 장소입니다. 일설에 따르면 바울은 마케도니아까지 갔다가 네로 황제의 명령으로 체포되어 로마로 송환되었습니다.
64년 7월 18일과 19일 사이에 로마에서 발생한 대화재는 6일 이상 지속되어 14개 구역 중 10개 구역이 파괴되었습니다. 당시 네로 황제는 화재 진압에 참여했으나, 화재가 그의 궁전 건축과 관련이 있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았습니다.
네로는 기독교도들에게 화재 책임을 덮어씌우기 위해 바울과 베드로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사형장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지하실의 춥고 눅눅한 감옥에서 처형될 것임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상황을 아는 성도들은 외면했으며, 바울은 디모데에게 급히 오라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드로아까지의 거리인 80km를 이동해야 하는 디모데에게 겉옷을 가져오라고 부탁했습니다. 바울의 체포 이후 로마 교회의 교인들은 그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결국 처형당하고, 그의 시신은 테베레강 하구의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이후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그곳에 바울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진제공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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